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AS 로마/역사 (문단 편집) == 00/01시즌 스쿠데토부터 2010년까지 == 이후 80년대 이전까지는 컵 대회에서만 강한 중위권 클럽이었지만, 80년대 들어서면서 당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많이 모이며 [[스쿠데토]]와 각종 컵 대회 우승, 챔스 준우승 등 클럽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고 90년대에는 구단이 부자에게 인수되고 돈좀 풀기로 마음먹으면서 00/01 시즌 최강의 스쿼드를 보유한 바 있다. 이 때, [[스쿠데토]]도 획득. AS 로마에게 또 명예로운 건 강등의 역사가 단 1시즌밖에 없다는 점. 그러나 그들의 챔스 준우승은 아쉬움이나 영광같은 그럴 듯한 추억보다는 추잡한 것, 즉 지우고싶은 그러한 것에 가까울 것이다. 바로 그 당시 4강에서 [[던디 유나이티드]]에게 2:0깨진 다음 2차전 경기 심판을 매수한 것이다. 한때 [[세리에 A 7공주]] 시절, 칠 공주 가운데 가장 후덜덜한 스쿼드를 자랑하기도 했으나, 로젤라 센시가 구단 경영을 개떡같이 한 결과 선수들을 거의 되팔았다. 특히, 루마니아의 수비리더 키부는 본인 의사는 끝까지 남겠다는 것이었으나, 구단 재정 문제상 [[인테르]]으로 이적했다.[* 떠나지 않겠다고 할 땐 언제고 떠난 후엔 생깠기에 로마 팬들은 키부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때 이탈리아의 유망주였던 카사노도 이 시절 AS 로마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또한 [[알다이르|로마에서 뛰는]] [[다미아노 토마시|선수들이]] 로마를 너무나 사랑하게 된다는 점도 있다. 그러다 보니 로마에서 이적하는 걸 싫어해 구단이 돈을 못 벌게 되는 경우도 있다. 피오렌티나의 레전드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악마의 재능으로 불렸던 [[안토니오 카사노]]의 경우는 예외인데 03/04 시즌에 로마의 황제와 함께 매지컬 듀오라 불리며 둘이서 경기를 지배하다싶을 정도로 활약을 했었지만[* 참고로 이때도 준우승했다.] 멘탈이 워낙 쓰레기라 연봉을 더 달라고 징징대다가 트레이드됐다. 이후 몇 년이 지나고 카사노가 개념을 좀 챙기고 나서 자신이 살면서 가장 후회했던 순간이 연봉 더 달라고 징징댔을 때라고.[* 하지만 올려 달라는 게 겨우 '''약 7억'''(40만 유로)이었단 걸 생각하면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그 7억을 못 올려줘서 결국 고작 90억(550만 유로)에 팔아야 했다.] 카펠로와 [[에메르손]]이 세트로 유벤투스로 떠나고 선수들을 계속해서 팔아치운 후 04-05 시즌에는 대대적인 부진을 경험했다. 스팔레티 감독을 중심으로 팀이 리빌딩되어, '나이는 약간 있지만 가격대 성능비가 좋은' 선수 위주로 영입활동을 펼치며 팀을 꾸려나가고 있다. 스팔레티 감독은 큰 경기 경험이 별로 없어서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경기를 꾸려나가는 꼼꼼함이 특징이다. 정통 공격수가 너무나 부족했던 로마의 사정상 스팔레티 감독은 토티를 중심으로 페로타, 만시니, 타데이, 피자로, 데 로시 등의 선수를 활용해 4-6-0 흔히 말하는 제로톱 전술을 구사해 다이나믹 축구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부진에 빠지자 09-10 시즌 도중에 감독직을 사임하는데, 로마의 어렵던 재정을 위해 잔여 연봉을 포기하는 위엄을 보여 많은 로마팬들을 끝까지 감동시켰다. 제만이 선임되기 전 여론에서 스팔레티를 원하는 팬들이 매우 많았던 것도 이런 모습 때문이다. 스팔레티 체제에서는 분위기 타면 엄청 강한 팀, 분위기 초치면 엄청 약한 팀으로 통한다. [[파일:roma_7-1.jpg]] 흔히 국내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1:7로 대패한 것만 기억되곤 하는데, 사실 1차전에서는 로마가 2:1로 이겼다. 그 직후 코파 이탈리아에서 인테르를 6:2로 쳐부순바 있다. AS 로마와 SS 라치오도 같은 경기장(Stadio Olimpico)을 홈구장으로 쓴다. 로마도 새로운 구장을 세우려고 계획 중이며 이름은 [[스타디오 델라 로마]]으로 정했다. [[http://www.ilgiallorosso.it/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3264:colosseum-il-nuovo-stadio-della-as-roma&catid=41:roma-cat&Itemid=246|#]] 단, 구단의 창단은 SS 라치오가 앞선다. 여느 [[더비 매치]]가 그러하듯 클럽과 서포터들은 매 시즌마다 반복되는 로마 더비에 목숨을 건다. 가장 간단한 예로 2006년 12월에 라치오 더비를 앞두고 AS 로마의 캡틴인 토티가 남긴 말이 있다. "로마 더비에는 반드시 출전할 것이다. 발목은 아직 다 낫지 않았다. 아프다. 사실은 발목 부상도 완쾌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없다. 라치오전에 출장할 수만 있다면 난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베스트 일레븐에서 인용)[* 우리나라 어느 여행자 2명이 AS 로마 유니폼을 입고 로마 시내를 가다가 라치오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들에게 수모를 당할 뻔한 실화도 있다. 길을 가는데 라치오 유니폼 입은 서포터들이 '로마?'라고 삿대질하더니만 마구 화를 내며 뭐라고 했는데 말투는 몰라도 욕설이라는 걸 느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더니만 한 10여 명이 마구 쫓아오는 통에 기겁하고 친구와 같이 마구 달려서 위기를 모면했다.] 06/07 시즌 중에 [[이영표]] 선수가 AS 로마로 이적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결국 [[토트넘 핫스퍼]]에 남았다. 07/08 시즌 종료 후인 7월 10일, 만시니가 [[인테르]]으로 이적하게 되었다. 08/09 시즌 중인 현재 팀의 재정이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속속 들리고 있으며, 이에 따라 팀의 주축인 데 로시, 아퀼라니 등의 선수의 거취가 주목되는 팀이다. 최근 세리에 A의 안 좋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대표하는 경우. 결국 아퀼라니가 리버풀로 떠났지만 그 이후의 커리어는 좋지 못했다. 09/10 시즌도 가난한 재정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고, 계속 좋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었으나, 미국 자본에게 인수되면서 세리에서는 상당히 재정 상태가 좋은 팀이 되었다. 센시 가문의 영 좋지 못한 상태로 인해 유니크레디트가 주가 된 채권단에게 넘어갔다가, 미국인 투자자 집단에 의해 인수가 되었다. 2011년 8월 즈음 인수가 마무리되었으며, 공식적으로 미국인 토마스 디 베네데토가 구단주에 취임하게 된 것은 10월이었다. 이후로 꾸준히 전략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선수들 영입으로 3시즌 만에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하게 되었으며, 알짜배기 선수들도 많이 배출해내는 구단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마르퀴뇨스, 라멜라 같이 남미의 어린 재능들을 사와서 재미를 보기도 했고, 나잉골란 같이 리그 내 중위 내에서 뛰는 선수들을 물어오기도 했고, 피야니치 같이 타 리그의 선수를 좋은 가격에 사오는 등 좋은 이적시장 전략으로 팀을 강화시켜, 현재는 다시 세리에 우승을 두고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